오늘은 수신자의 해석 세번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신자의 해석 세번째
따라서 수신자가 일련의 신호들을 메시지로 전환시키는 기계와 달리 미학적 메시지의 수신자는 의사소통과정의 최종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미학적 의사소통과정에서는 메시지 또한 최초의 무질서에서 막 벗어 나와 여전히 해석되어야 할 정보원으로서 또 다른 가능한 정보의 원천이므로 수신자는 새로운 의사소통 선상에서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보원이 되는 메시지(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Shakespear)의 「햄릿』은 수많은 해석의 원천이다)이든 여과된메시지(T. S. 엘리엇(Eliot)의 「햄릿」 독해)이든 그 메시지의 정보전달력은 정확하게 양화 (물化)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에코에 의하면 바로 이 때문에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정보이론은 의사소통이론이 된다. 즉 정보이론은 하나의 채널을 따라 분명하게 전달될수 있는 신호의 수를 양적으로 측정하는 단위로만 이용되기 때문에, 일단 인간이 신호의 수신자가 될 경우 정보이론은 그 연산체계를 잃게 되면서 추가할 내용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후부터 문제는의미작용(의미론)의 주제로 다루어지게 되며, 정보이론의 통상적인의미작용(단일한 일대일 대응의)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작용의 문제가 되므로 기호학이나 기호론에 자리를 내 주게 된다.
한편 에코는 이러한 예술적 메시지는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과 똑같은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기저에놓여 있는 메커니즘은 궁극적으로 여타의 의사소통 메커니즘의 전형적인 양태 –미리 주어진 신호와 주어진 기계적, 전기적 움직임 간에 단일한 대응관계가 수립되어 있는 약호에 따라 작동되는 기계에 의해 수신되는 단순전달을 포함하는 –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그렇다면 인간이 수신자가 될 경우의 의사소통, 특히 미학적 의사소통은 어떤 면에서 여타의 의사소통이나 기계적인 의사소통과 다른가? 다시 말해서 미학적 의사소통에 있어서 수신자의 태도와 정신구조는 어떻게, 왜 그토록 다양하고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가?
에코는이를 위해 특정한 자극과 수용자의 세계 간에 지적, 감각적 차원에서 이미 확립되는 상호작용관계 –지각과 추론과정 자체를 구성하는 상호작용과정 –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의사소통에 대한분석에 수행심리학을 빌려 온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지각이란 이미 객관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자극의 형태를 파악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보는 데 반해, 수행심리학(Transactional Psychology)은 이에 반발하면서 모든 지각과정과 지적과정이란 기본적으로 열려 있다고 본다. 에코는 바로 이러한 수행심리학에 힘입어 예술작품을 받아들이는 수신자(수용자)의 태도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한다. “모든 요소의 가능한 상호작용들을 다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각을 형성하는 행위자로서 우리 경험에 의존하게 된다.
즉 “주어진 망막유형과 관련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기체는 이전의 경험들을 소환해서 과거에 가장 그럴듯했던 것이 현재에도 가장 그럴듯하다고 가정하게 된다 ……. ” 그리하여 결과적으로얻게 되는 지각들은 ‘거기 있었던 것’의 절대적인 드러남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과거 경험에 근거한 개연성들이거나 그러한 경험들로부터 예측할 수 있었던 것들인 셈이다. 결국 인식과정은 열려 있는 과정으로서 경험에 의해 인도되는 주체는 가설과 실험, 시행착오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며,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대로 이미 다구성되어 있는 정태적인 형태가 아닌 가역적이고 변형가능한 구조를 찾아내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에코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우연히 모호한 세계와 작품을받아들이는 수용자의 반응에 열려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문화의 다른 영역들, 예를 들면 위의 현대 심리학 외에도 철학적현상학,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새로운 발견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거나 동일한 발전 선상에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메를로 퐁띠(Merleau Ponty)의 현상학이 철학자와 심리학자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을 위한 자극을 주고 있다고 본다.
퐁띠는 심리학자들의 지각에 대한 공정한 연구가 지각된 세계란 대상들-과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미의 대상들 –의 총체가 아니며,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사유의 대상에 대한 사유하는 자의관계도 아니며, 지각된 존재가 관념적 존재에 비교될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의식들에 의해 지각될 때의 지각된 사물의 통일은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이해된 바 있는 명제들의 통일에 비교될 수 없음을 밝혀주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지각에 있어서 전체가 부분들에 선행하기 때문에 지각을 분해해서 그것을 감각들의 집합인 것으로 해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