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는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도구이지만,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이러한 언어의 복잡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이 두 개념은 언어의 이중적 특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언어학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랑그는 한 언어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는 추상적인 언어 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문법 규칙, 어휘, 발음 체계 등을 포함하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나는 학교에 간다’라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옳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랑그의 영역에 속한다.
또한 ‘학교’라는 단어가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의미한다는 것물 모든 한국어 화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도 랑그의 일부이다.
이러한 랑그는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며, 한 언어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다.
반면, 파롤은 개인이 실제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구체적인 언어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랑그를 바탕으로 하지만, 개인의 선택과 의지가 반영된 실제적인 언어 사용이다.
예를 들어, 같은 ‘학교에 가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나 이제 학교 갈게”, “학교에 가야겠어”, “등교할 시간이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발화가 바로 파롤에 해당한다.
파롤은 개인의 언어 능력, 심리 상태, 상황 맥락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랑그와 파롤의 관계를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체스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체스의 규칙과 각 말의 움직임 방식은 랑그에 해당한다.
모든 체스 플레이어들은 이 규칙을 공유하고 있어야 게임이 성립된다.
반면, 실제 게임에서 각 플레이어가 어떤 전략을 사용하고 어떤 수률 두는지는 파롤에 해당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언어의 실제 사용에서 랑그와 파롤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예를 들어, ‘멋지다’라는 형용사가 있다고 하자.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용법은 랑그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 대화에서 “오늘 날씨 진짜 멋지다!”라고 말하는 것은 파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래 ‘멋지다’라는 단어가 주로 사람이나 사물의 외모나 능력을 칭찬할 때 사용되었다면, 이를 날씨에 적용하는 것은 개인의 창의적인 언어 사용, 즉 파롤의 예시이다.
이러한 개인적 사용이 점차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이 날씨를 묘사할 때도 ‘멋지다’를 사용하게 된다면, 이는 다시 랑그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신조어의 탄생과 정착 과정을 들 수 있다.
‘아싸’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이 단어는 처음에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창의적인 언어 사용(파롤)으로 시작되었다.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시작된 이 단어는 점차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무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 또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정착되었다.
이제 이 단어는 한국어 화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언어 체계의 일부, 즉 랑그가 되었다.
이처럼 파롤에서 시작된 언어 사용이 랑그로 편입되는 과정은 언어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랑그와 파를의 구분은 언어학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쉬르는 언어학의 주요 연구 대상을 랑그로 보았다.
왜냐하면 랑그는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파롤은 개인적이고 가변적이어서 체계적인 연구가 어렵다고 여겼다.
그러나 현대 언어학에서는 파롤도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언어 사용을 연구함으로써 언어의 변화와 발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랑그와 파롤의 개념은 언어 교육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외국어를 배울 때, 우리는 문법 규칙과 어휘를 학습하는데, 이는 랑그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언어 사용, 즉 파롤을 경험하고 연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어 학습자가 “How are you?”라는 표현이 인사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랑그의 지식이다.
그러나 실제 대화에서 이 표현을 적절히 사용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응답(“I’m fine, thank you.”,”Not bad.”,”‘Hanging in there.” 등)을 상황에 맞게 구사하는 것
은 파롤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