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의사소통에 대한 내용 두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에코의 세계와 의사소통 두번째
이렇듯 질서 있는 우주, 정수와 법칙의 위계질서가 자리 잡힌 완결된 세계로서의 중세에는 예술도 마찬가지로 완결되고 단일한 관점을 지니게 된다. 중세 예술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많은 미학사가들도 인정하고 있는바, “중세의 문화, 그 예술과 미학은 당대의 정치, 사회적 구조를 반영한다.” 중세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시기예술적 형태가 형성되는 방식은 과학이나 당대의 문화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결국 이 시기 예술작품의질서는 제국과 신정일치 사회의 거울인 셈이다.한편 이러한 질서 잡힌 중세와 달리 바로크시대와 낭만주의를 거쳐 온 현대의 세계를 에코는 불확정적이고 질서가 없는 세계라고 본다.
우리의 우주는 위기로 가득 차 있다. 말의 질서는 더 이상 사물의 질서와 조응하지 않는다. 말의 질서는 전통적인 체계를 따르기를 고집하는 반면 후자는 대부분 무질서와 불연속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우리 세계는 언어가 제시하는 질서 정연하고 수미일관된 세계와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기성체제와 단호하게 결별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제시하는 무질서하고 파편화된 영상에 훨씬 가깝다.
세계를 불확실성과 불연속성으로 보는 이러한 태도는 에코가 후기까지 견지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1980년에 쓴 『장미의 이름」에서도 마찬가지로 우주에는 질서가 없다고 본다. 우리 정신이 상상하는 질서란 단지 하나의 그물 혹은 어떤 곳에 도달하기 위한 사다리 같은 것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코가 보기에 이제 현대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기존의 질서 정연한 우주를 설명하는 데 이용되던 형식적 용어로는 더이상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현상의 불연속성이 통일적, 확정적인세계상의 가능성을 의문시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예술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보고 인식하고 우리의 감수성을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제시”하고자 한다. 즉 드뷔시(Debussy), 쇤베르크(Schonberg), 스트라빈스키(Stravinsky)와 같은 현대의 음악가들은 기존의 르네상스로부터 확정되어 온 음조체계를 거부하고, 상귀네티(E. Sanguineti: 63그룹의 멤버였음)와 같은 시인들은 각운의 규칙에 대해 거부하며, 현대회화(비구상 예술을 비롯하여)는 조형미술의 관계가 요구하는 과잉된 요소(눈이 두 개란 사실 때문에 언제나 두 개를 그려 넣는)를 제거하는 방식(눈 하나만으로도 얼굴 전체를 표현)으로 기존의 형식을거부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기존의 고전적인 음조체계에 대한 거부는 단지 새로운 고안과 매너리즘 간의 변증법 이상의 것으로서, 이러한 유형의 고전예술의 “형식적 습관들은 불변의 질서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이 고전음악의 음조체계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의 구조가 현재가 아닌 지나간 세계의 세계관을 반영하고구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코는 현대의 불확정적인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개념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즉 그가 보기에 작품의 형식이란 그 작품의 진정한 내용이다. 예술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의미 있게 말하기 위해 형식을빌려 발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형식을 조직하는 방법이요, 이것이 곧 미학적 원리이다. 형식은 사상을 전달하는매체가 아니라 사유방식이어야 한다. 여기서 에코는 예술작품의 형식과 같은 물질적인 실체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러한 소재적 측면이 기호학적으로 흥미로워짐을 인식하고 있다. 즉 기호학은 어떤 면에서 예술작품의 형식과 같이 인간의 도구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은 아무런 의미도, 특히 어떠한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지않는다는 사고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러시아 형식주의로부터 구조주의 기호학에 이르는 과정을 볼 때도 이러한 외적, 물리적 형식에 대한 주목은 기호학의 탄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볼 수 있다.
따라서 에코가 일찍부터 이렇게 현대예술과 시대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예술형식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의 기호학으로의 정향을 낳는 주요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해서 에코는 여기서 예술에 있어서 물리적 실체를 지닌 형식을 하나의 의사소통 형식으로 보며, 예술가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의사소통체계가 묘사하려는 역사적 상황과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경우 문제의 해결은 그러한 상황을 반영하며 그러한 상황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적 구조를 고안해 내는 것이라고 본다. 결국 예술은 형식적 구조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것으로서 이때 형식적 구조는 순전히 형식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내용이며, 예술적 실재는 곧 형식이자 구조이다.
이러한 형식에 대한 에코의 생각은 그의 스승 루이지 파레이손으로부터온 것이지만, 그 뿌리는 사실주익를 하나의 관습의 문제로 보고 형식과 내용의 구분을 버리고 형식에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내용은 형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형식개념에 가깝다. 이 형식 개념은 앞으로 4절에서 보게 될 파레이손의 형식형성 방식으로서의 형식 개념이라는 더욱 정교한 이론으로나아가게 되며, 그럼으로써 형식의 개념은 해석의 개념과 만나게 된다. 필자는 에코에게 있어서 해석의 문제는 그의 긴 학문의 변천 과정 속에서도 그의 가장 두드러진 면모라고 보기에 여기서의 형식 개념과 분리시켜 5절에서 해석의 무한성과 함께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