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신자의 해석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신자의 해석 두번째
이때 수신자는 자극과 반응이라는 상호 유희 속으로 들어가며, 이 유희는 각자의 작품에 대한 수용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 자신이 창조한 것과 똑같은 형태로 평가되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는 의도로 완결된 작품을 제시한다. 반면 각 수신자들은 작품을이해할 때 각자의 개성적인 감수성, 특정한 문화, 취향, 성향, 편견(선입견)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원래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각 수신자의 개별적인 전망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오직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되는 도로표지판과 달리 예술작품은 유기적 전체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완벽하고, 닫혀 있는 형식인 동시에 무수히 다른 해석에 의해 수용된다는 의미에서 열린 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예술작품은수용될 때마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얻게 되므로 예술작품을 수용한다는 것은 해석과 연주(실행, performance) 둘 다를 포함한다.
한편, 예술작품이란 그것이 설혹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작품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수신자의 자유로운 협력을 통해 향유될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에코는 이에 대해 이러한 논리는 바로 예술의 수용과 해석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 끝의 성과, 즉 현대미학의이론적 성찰의 성과 덕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중세의 작품인 경우,엄밀한 약호에 따라 구상되고 관습적인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호의 전달이기에 수용자의 해석이 없이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테의 13번째 서한20)을 들여다보면 중세의 독자들이 얼마나 사전에 미리 확실하게 규정되어 있고 절차까지 정해져 있는 해석 방법을 따라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독자들이 마주치게 될 알레고리적인 수사법과 상징의 의미는 이미 당대의 백과사전과 동물 우화집, 그리고 보석 세공술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다. 초기 기독교 카타콤브 그림들의 상징들을 보면, 닻은 희망을, 비둘기는 영혼을,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를, 포도넝쿨과 배는 예수를, 공작새는 불멸성을 상징하듯 모든 상징들은 객관적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며, 특정한 체계 속에 통합되어 있다. 에코는 이러한 필연성과 단일한 의미의 시학 기저에는 질서 잡힌 우주, 본질과 법칙들의 위계질서가 자리 잡고 있으므로, 텍스트 해석을 지배하는 법칙은 각 개인의 모든 행동을 규제하며 그의 삶의 목표나 그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마저 제공하는 그러한 권위적인 제도의 법칙과 동일하다고 본다.
이러한 중세와 달리 오늘날처럼 높은 비개연성을 갖고 있는 일련의 신호들을 전달하려면 수용자가 자유로운 자기 의지에 따라 메시지를 선택하고, 그러한 메시지에 이미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수많은 개연성 중 하나를 부과하는 수신자의 태도와 정신구조를 고려해야한다. 이를 위해 에코는 정보이론과 수행심리학을 빌려 수신자, 수용자의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다시 말해서 예술작품이 수신자의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자 한다.
정보이론에서 하나의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것은 어떤 정보를 선택해서 의미의 복합체를 조직하는 것을 뜻한다. 만일 정보의 수신자가 기계–이 경우 받아들인 신호를 특정한 약호로 정확하게 지시할 수 있는 메시지로 옮기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어 모든 신호가 하나의 유일한 것만을 의미하게 된다–라면 그 메시지는 하나의 유일한 의미를 지녔거나 아니면 자동적으로 소음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만일 수신자가 사람이어서 사람들 간의 메시지 전달이라면 상황은 이와 달라진다.
이 경우 모든 신호는 단일한 의미로 정확한 약호를 지시하기는커녕 온갖 함의를 갖게 되므로, “모든 기표가 특정한 기의와 조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단순한 지시적 약호만으로는 더이상 충분하지 않다.” 측 인간들 간의 정보전달일 경우 여과된 정보나 정보원이 되는 정보전달력 모두 양화(量化)될 수 없기에 이 지점에서 정보이론은 의사소통이론이 된다. 특히 미학적 메시지는 약호의 구성법칙과 규정요소의 체계를 파괴하기 위해 가능하면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모호한 방식으로 조직화하려고 한다.
일반적으로의사소통은 약호화를 필요로 하지만 예술에서는 약호화가 상습화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므로 기존의 약호화를 탈피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통상적 기호가 갖는 기표와 기익의 관계를 해체시키고,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새로운 질서 위에서 재조립하고자 한다. 에코는 이러한 ‘약호의 의도적인 무질서화의 결과’가 바로 미학적 메시지의 모호함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