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추리로서의 상정논법과 그 정당성 근거2

오늘은 종합추리로서의 상정논법과 그 정당성 근거 두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종합추리로서의 상정논법과 그 정당성 근거2

1. 종합추리로서의 상정논법과 그 정당성 근거

“만일 우리가 사전에 미리 많은 가설들을 시험해 보기 전에 다른 대부분의 가설들을 시험해 보지 않았는데도 모든 테스트에 다긍정적일 수 있는 하나의 가설을 예상하게 하는 지적인 어림짐작,추측(intelligent guessing)을 할 수 있는 그런 짐작의 능력을 우리정신(mind)이 지니고 있음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의 확신욕구가 절박하다 헤도 진리를 캐내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시도를 다포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당연히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그러한신비로운 짐작능력(guessing-power)이 쓰인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테스트될 가설을 선택할 때 그 짐작능력은 힘을 발휘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테스트도 해 보지 않고 행하는 이러한 지레짐작능력을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퍼스는 그의 프래그머티즘의 원리 중의 하나인 의미이론, 즉 개념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그 개념의실제적인 효과나 결과들의 총합이라는 태도와는 언뜻 보기에 어긋나는 듯이 보이는 대답으로 이러한 견해를 더욱 밀고 나간다. 모든상정논법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 즉 인간의 정신(mind)은 여러 번의 짐작들을 통해 경우에 맞는 올바른 가설을 우연히 발견하기 마련이란 의미에서 진리와 같은 혈족에 속한다.

여기서 퍼스는 약 두 세기 전 흄을 괴롭혔던 귀납의 문제를 상정논법의 문제로 주제를 바꾸어 버린다. 즉 퍼스는 그가 생각하기에귀납(양적 귀납)이 타당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 정신은 어떻게 가설 형성에 성공적일 수 있는가라는물음, 즉 우리는 어떻게 과학적 이론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는 면에서 그가 홈모했던 칸트와 유사하게 그의 문제는 가히선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그는 어떻게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라고 묻는 대신 어떻게 종합판단(추리)은 가능한가라고 묻고 있다.이 점에서 하버마스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칸트가 분석판단과 마찬가지로 종합판단도 타당하다고 가정한 데 반해, 퍼스는 대체로 우연적 혹은 임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탐구(inquiry)와 같은것이 가능하다면 종합추리도 타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 대해 퍼스는 인간은 진보과정을 거치면서 동물의 본능과 일상의 상식이나 생활의 지혜뿐만 아니라 그러한 본능들이 인식영역에서 갖는 기능, 다시 말해서 자연의 작용들에 주목하는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감각(a sense of the plausibility)’도 타고났기 때문에 이러한 종합추리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럴듯함(plausibility)이란말로 나는 우리의 본능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증거 외에 다른 어떤 증거도 없이 우리의 신념에게 하나의 이론이 그 자신을 추천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모든 다른 동물들은 분명히 그러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인간에게 있는그 본능의 능력을 거부하는가? …… 물리학자들은 분명히 어떠한 가설을 먼저 테스트할 것인가 하고 선택할 때 바로 이러한 그럴듯함에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감각이 과학자들에게 상정논법적 능력을 부여해 준다. 그리하여 실험시에 이러한 능력이 동물적인 본능과 동일하게 작용하여 과학자들로 하여금 최소한 선택할 만한 가설과 무용한 가설을 구분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수단으로 중무장하게 하므로 가히 이 본능은 인식적인본능(cognitive instinct)이라 할 만하다.

“어떻게 해서 인간은 참된 이론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을진대 …… 갓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가능한 한 모든 이론을 다 뒤적이고 나서 어떤 것을 쪼아 먹는다는 생각을 깨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닭은 이미 이러한 행위에 대한 본유관념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행위를 할 생각을 할 수는 있으나 그 외 다른것을 생각할 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닭은 본능적으로 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모든 닭들이 (이렇듯)진리에 대한 타고난 경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려 한다면 어째서 인간에게만은 이러한 재능이 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까?”

결국 퍼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것들이 저런 것들보다 더그럴듯하다는 우리의 본능적인 통찰이 과학의 발달을 가장 가능하게 해 주는 증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럴듯하다고 여겨지는 느낌, 즉 상정논법적 능력은 진리는 탐구(inquiry)의 가장 중심에 놓여 있다는 퍼스의 이론에서 진실로 결정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상정논법의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퍼스가 예로 든 터키지방 통치자의 경우처럼 상정논법은 언뜻 보기에 마치 감정에 치우친 상상력의 자유로운 연상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지레짐작 능력은 동물의 본능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화론적 적응과정에서 자연의 과정에 기능적으로 동조하면서 부여받게 된 능력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분자역학을 이론화할 때 우리는 우리 본능의 안내를 받았다.이러한 본능들은 참이라고 할 만한데, 이유인즉 그 본능들은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바로 그 법칙의 영향 아래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게시물이 도움이 되셨습니까?

평가를 해주세요.

평균 점수 0 / 5. 투표수: 0

첫 번째 평점을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

error: 우클릭이 불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