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식의 오류가능성 두번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지식의 오류가능성 두번째
오히려 경험적인 반박은 하나의 가설이 거짓임을 보여 주는 반면,우리가 검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그 가설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다만 그 검증은 잠정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근거를 제공해 주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과학적 가설들은 그 개연성의 정도가 다양하며, 모두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퍼스가 볼때 인간 지식(인식)이라고 불리는 모든 형식화들은 불확실하며 오류가능성이 있다. 바로 여기서 그의 오류가능성 원리(Principle of Fallibilism)가 나온다.
그의 오류가능성원리가 객관진리를 자동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탐구는 객관진리를 사심 없이 연구하는 것이며, 진리란 것이 없다고 믿는다면 어떠한 이론적 물음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과학을 추측과 반박에 의한 진보라고 본 포퍼와 너무도 유사하게오류가능성원리 –이에 따르면 독단주의는 진리추구의 적이다 – 와객관진리에 대한 사심 없는 탐구를 통해 탐구(inquiry)의 이상적 목적으로서의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 나가며, 우리는 오직 거기에 근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의미에서 그는 결코 모든 인간의 행위양식을 도구적 행위로 환원시키고 있지 않다.
이러한 탐구를 위해서 그의 프래그머티즘은 개념을 명확히 하는방법 혹은 개념의 의미를 밝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퍼스는 여러 가지로 프래그머티즘의 원리를 말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서다음의 것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지적 관념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위해서 우리는 그 관념을 나중에 반드시 결과 될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실제적 효과들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때 이 결과들의 총합이 바로 그 관념의 전(全) 의미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미를 명확히 함으로씨 퍼스는 프래그머티즘이 이전의모든 존재론적 형이상학의 명제들이 무의미한 횡설수설 –한 단어는 다른 단어들에 의해 규정되고, 그 다른 단어는 또 다른 단어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어떠한 실제적인 관념에도 도달할 수 없다-이거나 아니면 명백한 부조리임을 보여 주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잡동사니들을 일소하게 되면 철학은 진정한 과학의 관찰방법을 통해 탐구가능한 문제들만 남게 된다. 이 점에서 그의 프래그머티즘은 일종의 (논리적) 실증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그가 형이상학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는 형이상학이란 규제적으로(regulatively) 타당할 뿐만 아니라 존재의 진리로서의 논리적 원리들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들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C. S. 퍼스(Peirce)의 反데카르트적 인식론
진리추구와 관련해서 퍼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데카르트 전통에반대하는데, 그의 데카르트 비판은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그 자신이 전개하는 인식론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길잡이이다. 잘 알다시피 데카르트는 확실성과 정확성을 지닌 수학에 깊이감명을 받으면서 철학에 수학의 정확성을 도입해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연역가능한 진리체계를 가질 수 있는 분명한 이성적 원리들을 구성하고자 했다. 대륙의 합리론자들과 함께 그의 주요 논점은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진리의 원천이라고 생각되는 인간정신의 이성적인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어떠한 명제들은 아주 단순해서 그들의 진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삼각형은 세 변을 지닌다, 2+2=4,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명한 진리를 우리는 이 같은 방식으로 직관한다. 즉 우리는직점적으로 알려진 전제의 진리를 직관하는 것이므로, 직관은 아는정신(knowing mind)과 알려진 사실 혹은 진리(known fact or truth)라는 두 항 간의 관계이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이러한 직관이론은 다음과 같은 직접지(direct knowledge)의 전통적인 견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추리나파생적인 지식이 되려면 우선 그 추리가 기대고 있는 어떠한 직접지가 있어야 한다. 즉 지식의 어떤 부분은 그 지식의 다른 부분보다 직접적이고, 단순하며, 파생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데카르트 이후로 근 200여 년 동안 데카르트의 직관 이론은 살아남아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식의 직관을 설명하기 위해 어떠한 테스트를 해야 하는가? 혹은 어떠한 증거가 그러한 이론에 호의적일 수 있는가? 데카르트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직관적으로 알려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