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퍼스(Peirce)의 反데카르트적 인식론 두번째

오늘은 C. S. 퍼스(Peirce)의 反데카르트적 인식론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C. S. 퍼스(Peirce)의 反데카르트적 인식론 두번째

1. C. S. 퍼스(Peirce)의 反데카르트적 인식론 두번째

아니면 만일 직관이 없다면 모든 종류의 지식이 추리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인가? 퍼스는 1868년 논문들88)에서 데카르트를 비판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데카르트의 직관이론의 방법론적 결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무전제의 출발점을 발견할 때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고자 한다. 따라서 둘째, 이러한 의심이라는 테스트를 이겨 내고 남은 단순한 신념은 그자체가 직접적이고 단순하며 자기충족적인 진리지식, 즉 직관의 예임을 증명한다. 이에 대한 퍼스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정한

의심이란 어떤 외적 혹은 내적 경험이 우리 신념과 충돌할 때 생기는 것으로서, 임의로 단순히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외적, 내적 경험이 우리의 신념과 충돌하게 되는 경우 우리는 더 확고한 근거 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다시 세워 보거나 더 근거 있는 믿음으로 대치함으로써 의심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탐구하게 된다. 따라서 의심은 탐구에 있어 긍정적인 가치를 가지는 하나의 자극제이다. 만일 명제의 진리를 의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명제 혹은 이 명제가 기대고 있는 하나의 명제의 진리를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외의 보편적인 의심의 방법을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허위의 의심이다. 오히려 이 경우 의심은 다른 신념(들)을 전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철학을연구하고자 할 때 실제로 갖게 되는 편견들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어떠한 절대적인 무전제의 완전한 출발점이란 있을 수도 없고 또한 필요하지도 않다.

두 번째로 퍼스는 cogito ergo sum에서 사유하는 주체의 존재는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한다. 자라나는 어린아이들과 그들의 말하는 습관을 관찰한 결과 그러한 자기의식 혹은 자신에 대한 지(知)가 없다. 오히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어른들)이 그들에게 건네는 말을 해석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사유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예를 들어, 타미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것이지 피터가 생각하는 것이 아냐). 따라서 자기의식혹은 자기지는 사실상 추리적인 것이되 다만 자기지가 기반을 두고있는 추리가 대개의 경우 우리에게 아주 습관적인 것이 되어 우리는곧잘 쉽게 이를 즉각적인 혹은 직관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퍼스는 자아 혹은 자기가 발생적으로 추리된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직관적인 자기의식에 대한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퍼스가 보기에, 어떤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분류하거나 다른 것과 관련시켜야만 한다. 즉 하나 혹은 다른 종류의 기호나 상징을 사용하지 않고는 어떤 것에 대해 알수가 없다. 빨간 꽃의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어떤 대상의 색이 빨갛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다소간의 정도차이는 있을지라도 다른 유의 대상들(다른 빨간 대상들)과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음을아는 것이다. 결국 어떤 주어진 색에 대한 소위 직접적, 직관적인 지식이란 증거를 확인해 보는 어떤 것이요 혹은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적 의미에서 나중에 행해지는 실제적인 결과에 대한 확인에 의해서이다. 결국 퍼스는 외관상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지식은 오히려 그 본성상 하나의 가설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앞에서 오류 가능성 원리에서 보듯 과학은 절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에 관해 알 수 없다. 과학은 다만 그러한 사실들을 설명하는 법칙들을발견함으로써 사실들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때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에는 그 존재나 특징에 대해 전혀 설명되지 않는 그 이상의 사실들에 관한 가설이 포함된다. 그런데 일정한 특징들이 체계화나 분류화의 특별한 대상(들)에 일정한 방식으로 적용된것이라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는 셈이므로 데카르트가 말하는 직관지는 결국 본성상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물론 가설의 진리는테스트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그 결과나 효과에 의해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지식들은 우연히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 모든지식은 이전의 다른 상황과 관련해서 알게 된 분류화나 체계화익 어떤 방식이 또 다른 특정한 방식으로 주어진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으므로–이전에 알았던 것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지식(인식)상황은 본질적으로 기호상황에 속하며, 이 점에서 퍼스는 확연히 데카르트적 전통과 결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데카르트적 전통이 지식을 본질적으로 직접적이고 이원적인 즉 아는 주체(정신)와 알려진 사실이라는 두 항 간의 관계로 보는 데 반해 퍼스는 기호(하나의 지식 혹은 인식, 의미된 대상, 그리고 해석체(interpretant: 이전의 지식)라는 세 항들을 포함하는 삼원적인 것으로 본다. 인식상황은 데카르트주의적인 견해보다 훨씬 복잡하다. 직관적 사고는 없다. 다시 말해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사고라고 진정으로 불릴 수 있는 어떠한 사고도 대상과의 감각적인 접촉하에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고는 다른 사고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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